2024. 9. 2. 17:32ㆍ사랑
------- 더는 묻지 않을래 -------
...
출근 잘했냐는 그의 카톡에
그동안 고마웠다며
나는 다른 설명 없이
그만 연락하고싶다는 의사를 고했다.
그는 예상답게 특별히 반응하지 않았다.
바빠서 연락 잘 못한것때문에 그래? 몇마디 건네는 너
매번 이러는거에 지쳤던 걸까
그냥 그러다 말꺼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렇게 마음쓰지 않는다는게 정확하겠지.
그순간까지도 나는 그의 몇마디 카톡 속에서 헤매며 궁금해하고 있었다.
.... 이런 내모습 이제 그만 보고싶어
오히려 처음 보여줬던 모습보다 줄게 많았던 것은 나였을텐데.
나를 있는 그대로 품어주던 느낌의 너같은 사람이라면
꼭 보답하고 싶은
스스로한테조차 놀라운 내가 참 많다는걸.
나를 진심으로 좋아한다 고백했던 너는
왜 니 세상에 빠진채 가지려하지 않았던걸까?
반짝반짝 빛나는 내 옆에서,
평소에 잘 우울해하던 너는
적어도 나의 힘을 빌려 온전해질 수 있었다는걸.
가끔 울먹일때만 흔들릴때만
떠나지않는다며 달래며 옆에있어준다면
너가 보지 못하는
보지 않는 세상을
그치만 알고싶어하던 세상을
나는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걸.
어딘가 자신없어보이던 너의 그 약한 부분을
채워주고 싶었다는걸.
채워줄 수 있었다는걸.
당연히 바쁜거 이해하고 괜찮다고. 그동안 고마웠다고 말했다
아니야 또 봐야지~ 같은 반응.
그렇게 중점을 피해가는 너한테 대답없는 나에게
너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 퇴근톡을 날리더라.
중점을 피해 계속 다른 얘기를 향해가는 그의 톡은, 우리가 그런 사이가, 그런 맥락이 아니라는 표현이겠지.
그 이후로도 이틀 후 주말 잘보냈냐 카톡이 날라왔고
또 이틀 후 뭐하고 지내냐 왜 말이없냐는 세번째 연락을
새벽에 언뜻 깨서 본순간
나는 약간 멈칫한 후,
한번만 연락이 또 오면 누르려던 프사숨김차단 버튼을 눌렀다.
더 이상 이사람의
영원히 의미모를것이 분명한 연락
그 여부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고싶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지금 그를 끊어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사실 그것은 아리에띠의 생각일뿐이기에.
살면서
구남친은 물론
마음을 조금이라도 열었던 사람에게
차단을 해본적은 없었다.
그래서 이건 나한테
좀 황당한 최초의 전개긴 하지만,
룰도 정답도 예의도
더이상 아무렴 상관없는걸
너가 내 마음을 아끼지 않는듯
나도 이제
너를 아끼지 않을래.
어느 작별이 이보다 완벽할까..?
Love me only until this spring.
그 다음날 아침,
내 차단을 발견했는지
연락은 안하더라도 내가 두고간 손목시계랑 보내주겠다며 주소 알려달라고
문자가 오더라.
그것도 대답하지 않았다.
늘 몸에 차고 있던 내가 참 좋아하던 아르마니시계.
겸사겸사 잃어버린 걸로 치려고.
더 이상 엮일 어떤 변수도 만들고싶지않았기도했고
또 이건말이야 어쩌면 어울리는 상징같아서.
난 모든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
내가 네 집에 하필 까먹고 시계를 두고온 것도말이야
그렇게
열네살 여름의 마음으로
시간여행을 떠났던 나는
더이상 내 손이 이끄는 곳으로 따라오지 않는 그의 손을 놓아버리고
영화의 종료 버튼 마냥
카톡차단 버튼을 클릭했다.
나 더는 묻지 않을래
알려주지 않아도 돼
Don't you know how sweet it tastes,
NOW THAT I'M WITHOUT YOU?
장난치다 Fall in love의 시작으로 들어갔듯
장난처럼 Fall out of love 하면 그뿐.
그러고 나와 그 전처럼 걸으면 그 뿐.
내가 확실히 아는 단 하나는
너는 내가 가질 수 있는 최선
또는 차선도 아니라는것
열네살은
뭐든 다 아름답고 아프지만
그래봤자.
열다섯이되고 열여덟이되고 스물다섯이되고
그렇게 지나가는 단계일뿐이라는걸
불확실한 걸 확실하게 알지못해 힘든 덕분에
이미 확실히 아는 것들을 더욱 소중하게 여길 수 있다는 걸
버튼을 눌러도
너가 건드린
내속의 열네살의 여린 아리에띠는 아직 내안에 있기에
괜찮다가도
혼자 침대에 누워 외부 세상이 잠잠해질때면
나 여깄어 빼꼼하고 모습을 드러내는
내속의 아리에띠는
다시금 너를 찾더라
너랑의 그 시간이 생각나
너의 그 목소리 말투
한없는 다정함을 알게됐던 우리 처음 데이트들
니 그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빛이 생각나
그 눈에 비친 사랑스런 내가 생각나
그 모든 것에 있는 힘껏 사요나라를 외쳐내고
눈물에 눈앞이 흐려진채
또 핸드폰 속 니 차단된 카톡을 바라보게되면서도
참았다.
라탄조명이 은은히 밝히는 방천장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린 기억이 흐려지기를 단지 기다릴 뿐이었다.
.
너와 처음 연락이 깊어진 날 밤
조그맣게 몸을 숙여 들어간
서정적이고도 불안했던 그 애니메이션노래 속
두 달간의 내 새벽을 차지했던 그 세상 속,
어딘가 공허한 곳이 있던 너라는 남주.
니 손을 잡고 벅차게 밤을 달려나가던 나는
밝아오는 아침에 그 손을 놓아버렸어.
이게 너와 나의 이야기야.
함께이고 싶었던 눈부신 하늘 햇빛에
산란하는 눈물을 바라보며 쓴
나의 우리 이야기.
사실은 버튼 하나로 끌수 있었던.
그 이야기.
.
***********에필로그
카톡정리 몇 주인가 후, 생일 사건 이후론 처음으로, 그에게서 전화가 와있더라. 퇴근했냐는 문자와 함께.
무시할까하다가, 할말은 하며 사는게 좋으니
이런 맥락없는 연락 별로 좋아보이지 않는다는 나의 솔직한 감상을 답으로 남겼다.
통상의 나대로.
서로 물건은 돌려줘야지 않겠냐고 몇마디 보내는 너에게
내껀 그냥 처분해달라고 니것도 못돌려줘서 미안하다고 답했고,
그는 너무한다고 했다.
뭔 소리요.
뭐, 됐어.
내 마음이 열린 그 순간은
굉장히 독특한 순간이라
지나가면 나한테도 그 뿐이란다.
너랑 나 마지막 그날은 비가 많이 내렸지.
너의 차 안에서 비오는날듣기좋은노래를 틀어두고, 이런 노래 만들어두면 가수들은 시즌마다 잘 팔려서 좋겠다 조잘대던게 생각난다. 이 노래가 너한테 들릴때면 처음 이걸 들려준 내가 기억날 걸 알아.
나는, 가느다란 왼쪽 팔목의 훵함이 낯설 때마다 니가 기억이 나. 그리고 살짝 미소지어져.
Anti Climactic한 이 우스운 러브스토리.
맘껏 엉망으로 망쳐내버린 이 어린 봄날의 기억.
비워낸 이 자리를 채울게 무엇일지 참 설레서.
그 세상은 어떤 선율의 색인지 너무 궁금해서.
너의 손을 잡고 또 놓아버린 순간이
계속 내 안에서 빛날 수 있도록,
플레이리스트에 잘 저장해둔 채 말이야.
.
.
.
다음엔 어떤 노래를 들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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